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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궁전 (스플릿, 크로아티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궁전 (스플릿, 크로아티아)

이 요새 같은 궁전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고향 근처의 해변에서 지은 궁전이었다.

역사

검색어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고대 로마, Római Birodalom, 크로아티아, 지중해, 로마, 달마 티아, 디나르 알프스 산맥, 황제, 제국의 기간, 요새, 지방, 이력, 유물, 건축학, 문화, 교회에, 포트, 문, 웅장한 무덤, 아드리아 해

관련 엑스트라

질문

  •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궁전은 언제 세워졌습니까?
  •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궁전의 유적은 현재 어느 나라에 찾을 수 있습니까?
  •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궁전은 어느 바다의 해안에서 세워졌습니까?
  • 디오클레티아누스는 황제로서 어떤 정치체제를 도입했습니까?
  •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사두 정치 때 동안 어떤 직함을 갖고 있었습니까?
  • 디오클레티아누스의 통치 기간은 어떻게 끝났습니까?
  • 궁전의 구조를 보니까 어느 건물의 특징이 보이지 않습니까?
  • 디오클레티아누스가 거기에서 사는 동안 궁전 내 사람이 몇 명 살았습니까?
  •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이 궁전에서 언제 살았습니까?
  • 이 단지는 평면도는 어떤 모양입니까?
  • 어느 벽 옆에 감시탑이 없습니까?
  • 궁전은 어떤 문이 없습니까?
  • 궁전은 벽이 얼마나 높습니까?
  • 궁전 영역은 3만 km² 넘는다는 말이 맞습니까?
  • 종교적인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구역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 궁전은 어느 로마 주에서 세워졌습니까?
  • 궁전에는 탑이 몇 채 있습니까?
  • 어느 문이 정문이었을까요?
  • 어느 입구는 바다를 향했습니까?
  •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묘는 평면도이 어떤 모양입니까?
  •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어느 로마 신을 수호신으로 여겼습니까?
  •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어떻게 사망했습니까?
  •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이 궁전에서 사는 기간이 10년을 안 넘었습니다. 맞습니까?
  • 페리스타일이란 무엇입니까?

장면

궁전

  • 디나르알프스 - 서북쪽으로 걸친다. 가장 서쪽에 있는 경사는 해변에 접해 있다. 석회석으로 만들어졌다. 석회석은 그 지역에서 가장 흔히 사용한 재료였다.
  • 아드리아 해 - 지중해의 일부이며 이탈리아 반도와 발칸 반도 사이에 위치한다. 아드리아라는 도시에 따라 이름이 지어졌다.
  • 항구 - 궁전은 바로 해변에 세워졌다. 방파제가 지키는 만 덕분에 배들이 안전하게 부두에 댈 수 있었고 바다쪽에서 궁전에 들어갈 수 있었다.
  • 궁전 -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이 궁전을 3세기 후반, 4세기 전반에 짓게 했다.

궁전 건설은 서기 295년에 시작되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당시 최고 전성기 때였고 이 건물에서는 은퇴 후에 보낼 시간을 지내려고 했다. 궁전의 위치를 정하는 데 중요한 요인은 살로나라는 황제가 태어난 도시가 가까웠다는 것이었다. 살로나는 달마티아라는 로마 속주의 수도였다. 또한, 충분한 유황과 물 공급은 직물생산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도 중요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궁전은 디나르알프스 산맥 기슭에, 아드리아 해의 해변에 지어졌는데 로마와 멀었는데도 완전히 외딴 도시가 아니었다. 건설이 완성된 다음에 그곳에서는 약 9000명이 살았다. 살로나 근처의 강에서 물을 얻었다.

항구

  • 방파제 - 항구의 바다와 가까운 편에 지어졌다. 해류와 파도로부터 보호했다.
  • 바다를 향하는 입구 - 바다의 문, 아니면 청동 문이라고 했다. 해상무역 때문에 중요해졌다.
  • 남쪽 파사드 - 다른 세 면보다 덜 강화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부분은 가장 성과 같았다.
  • 옥상 정원 - 아마 황제의 숙소을 장식했다. 단지 남쪽의 성 같은 구조를 강조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궁전 단지를 바로 해변에서 지으라고 했다. 그러므로 궁전을 잘 지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교통도 편리했다. 사람이든 물건이들 쉽게 나를 수 있었다.

바다를 향하는 입구가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개인적인 입구라고 믿어진다. 그 문을 통해 황제의 속소로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궁전은 반도 위에서 지어졌는데 파도하 바다로부터 아마 인공 방파제가 지키고 있었다. 또한, 이 정박지의 대륙과 가까운 부분은 에서 내리고 무역선의 화물을 내리는 데 쓰였다고 한다.

구조

  • 금문 - 궁전의 북쪽 문이자 카르도의 끝부분 중의 하나다.
  • 북동의 단지 - 군인과 하인의 숙소하고 서비스 건물은 궁전의 북부에 위치했다.
  • 중심부 - 카르도와 데쿠마누스의 교차로서 궁전을 네 부분으로 나눈다.
  • 은문 - 궁전의 동쪽 문인데 Porta Argentea 아니면 Porta orientalis라는 이름도 있었으며 데쿠마누스 끝부분 중의 하나이다.
  • - 장식된 8각형 건물인데 윗부분에 반구형 지붕이 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휴식처로 이용되었다.
  • 동쪽 단지 - 황제의 숙소 부분은 더 장식되어 있었고 단지의 남쪽에 위치했다.
  • 청동문 - 남쪽 문은 Porta Aenea 아니면 Porta meridionalis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었다.
  • 서쪽 단지 - 황제의 숙소 부분은 더 장식되어 있었고 단지의 남쪽에 위치했다.
  • 유피테르신전 - 오늘은 이 직사각형 신전은 잘못되게 유피테르신전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아마 다른 로마 신, 야누스에게 헌정되었을 것이다.
  • 철문 - 궁전의 서쪽 문인데 Porta Ferrea 아니면 Porta occidentalis라는 이름도 있었으며 데쿠마누스 끝부분 중의 하나이다.
  • 북서의 단지 - 군인과 하인의 숙소하고 서비스 건물은 궁전의 북부에 위치했다.
  • 테메노스 (성역) - 궁전의 천골부의 영역은 황제의 숙소와 데쿠마누스 사이에 위치했다. 이곳에는 신전들이 있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궁전은 다양한 건축 요소를 갖고 있다. 군주둔지 (castra), 궁월 (palatia)과 지방 주택 (villa)의 요소를 썩어서 합치는 곳이다.

직사각형 궁전의 동쪽 면과 서쪽 면은 같은 정도로 길고 둘다 215 미터에 달하는데 북쪽 면은 175 미터이고 남쪽은 181 미터이다. 그의 결과로서 궁전의 평면도는 사다리꼴이다. 단지의 전체 영역은 30,000 m² 넘는다.

동과 북으로 되는 데쿠마누스는 궁전을 두 부분으로 나눈다. 북쪽에 위치하는 건물들은 남쪽에 있는 더 장식된 건물들보다 간단했다. 종교적인 건축들을 속하는 테메노스는 데쿠마누스 남쪽에 위치했다. 바다의 방향으로 가면서 황제 숙소와 연결된 건물들을 지난다.

동쪽, 북쪽과 서쪽 벽은 감시탑큰 문을 갖고 있는데 요새 같은 성격을 비춰준다. 그런데 바다 쪽에 있는 부분은 더 우아하고 꾸며 있으므로 이 건물의 궁전 같은 성격을 강조한다.

외벽은 평균 15-20 미터 높고 2,1 미터 두껍다. 총 16 채의 탑이 있다. 금문, 은문과 철문은 각 2 채의 탑으로 보고되어 있지만 바다를 향하는 일부는 탑이 없다.

문들의 이름은 아마 그리스 신화와 로마 신과에서도 들을 수 있는 시기를 가리킨다. 황금기는 평화 및 번창의 기간이었다.

궁전은 입구4 군데 있었다. Porta Aurea (아니면 Porta septemtrionalis)는 궁월의 북쪽 대문이자 카르도의 끝 중의 하나였다. 궁전 이내로 가는 매우 장식된 대문은 살로나 - 아스팔라토스 도로에서 이룰 수 있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사망한 후에 장식된 8각형 무덤에 묻혔다. 각 면은 7,6 미터 길었다. 8각형은 지구에서 하늘로 가는 이행의 상징이다. 묘는 24 개의 코린트식 기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기와 지붕을 갖고 평균 3 미터 두꺼운 벽이 둘러쌌다. 원형 묘실은 중심부가 21 미터 높고 지름이 13 미터 길었다. 벽 내부에 프리즈가 보이고 틈새에 조각상들이 서 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석관은 묘실의 중심부에서 발견되었다.

유피테르신전은 서기 295년과 305년 사이에 지어졌다. 이 직사각형 신전받침대 위에 서 있다. 입구 쪽으로 가는 포르티코는 6 개의 기둥이 있으며 박공 지붕의 2 개의 끝부분은 팀파논으로 닫혀 있다. 입구 위에 있는 팀파논은 신들과 영웅을 묘사하는 돋을새김을 포함한다.

전통적 의견에 의하면, 로마의 주요신인 주피터, 즉 하늘과 번개의 신을 위한 건물이었다. 주피터의 숭배는 특히 디오클레티아누스 통치 기간 동안 매우 중요했다. 그는 이 신을 수호신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서기 284년과 305년 사이에 로마 황제였다. “3세기의 위기”를 끝내서 전제군주제의 지반을 구축했다. 그의 개혁들은 제국의 안정성을 다시 강화시켰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서기 244년에 로마의 달마티아 주의 살로나라는 도시 근처에서 태어났다. 그의 군인으로서의 경력은 아마 카루스 통치 기간 때 시작되었다. 카루스의 아들이 사망한 후에 군사가 황제라고 선포했다.

통치 기간의 첫 이십년 동안 전쟁많이 사웠는데도 조상들의 운명같이 당황하지 않았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4두 정치를 도입한 후에 그와 막시밀리안은 아우구스투스로 통치하는 동안 갈레리우스와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는 카이사르(즉 로마 황제)로서 다스리고 있었다. 제국은 더 이상 통합한 나라가 아니었는데도 보호지도하는 것이 간단해졌다. 그러나 내부 정치 갈등이 계속되면서 경제적 (재정상의) 문제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더욱이,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어서 서기 305년에 (로마 황제들 중에서 최초로) 자발적으로 퇴위하였고 고향에서 세운 궁전에 돌아갔다. 그러나 거기에서 보내는 시간을 길게 즐길 수 못했다. 서기 312년에 죽었다.

고대 때에 쓴 로마 황제들의 전기를 모은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라는 기록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vir rei publicae necessarius', 즉 '국가가 필요한 남자'라고 불렸다.

산책

애니메이션

  • 궁전 -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이 궁전을 3세기 후반, 4세기 전반에 짓게 했다.
  • 금문 - 궁전의 북쪽 문이자 카르도의 끝부분 중의 하나다.
  • - 장식된 8각형 건물인데 윗부분에 반구형 지붕이 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휴식처로 이용되었다.
  • 청동문 - 남쪽 문은 Porta Aenea 아니면 Porta meridionalis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었다.
  • 유피테르신전 - 오늘은 이 직사각형 신전은 잘못되게 유피테르신전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아마 다른 로마 신, 야누스에게 헌정되었을 것이다.

내레이션

디오클레티아누스는 황제로서 3세기 후반, 4세기 전반 동안 다스렸다. 궁전 건설을 고향인 달마티아에서 서기 295년에 시켰고 퇴위한 후에 거기에 돌아가려고 했다. 서기 305년에 자발적으로 퇴위하였고 아드리아 해해안에서 세운 궁전에 돌아갔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궁전 궁월 (palatia)의 요소 뿐만 아니라 군주둔지(castra) 및 지방 주택(villa)의 일부도 합쳤다. 이 궁전은 독특하게 나눈 구조인데 군사적 부분은 강한 벽감시탑을 갖고 있었다. 황제의 장식된 숙소, 또한 바다를 향하는 남쪽 벽은 궁월과 비슷했다. 이 면에 감시탑이 없었지만 다른 세 면에는 총 16 재의 탑이 서 있었다.

네 개의 문들 중에어 가장 꾸민 하나는 금문(Porta Aurea)이었다. 이 문을 통과한다면 북-남 쪽으로 되는 카르도, 즉 궁전의 주요 축이 있었다. 다른 축, 즉 데쿠마누스궁전의 중심지에서 교차했다. 이 두 축의 교차 다음에 오는 넓은 공간은 페리스타일이었다. 이의 동쪽에 디오클레티아누스의 , 서쪽에 유피테르 신전이 위치했다. 황제의 숙소와 연결되어 있는 장식된 건물은 궁전의 남쪽에 있었다. 은문(Porta Aenea)은 항구와 아드리아 해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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