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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 제국

마케도니아 제국

전설적인 장군이자 통치자인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막대한 제국을 세웠다.

역사

검색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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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엑스트라

장면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제국

  • 지중해
  • 흑해
  • 카스피 해
  • 홍해
  • 페르시아 만
  • 아라비아 해

마케도니아 성쇠는 기원전 4세기, 주로 훌륭한 군대 덕분에 성공되었다. 전성기는 필리포스 2세, 그리고 그 아들 알렉산데르 3세 (대왕)의 통치 기간 때였다. 대왕은 군사적 정복으로 거대한 제국을 세웠다.

이 제국은 다뉴브 강에서부터 인더스 강까지,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부터 인도까지 이어졌다. 가장 확대했던 시기 때 영토가 500만 km² 넘었다.

군사작전

  • 카이로네이아
  • 펠라 - 마케도니아의 아르켈라오스 1세가 기원전 5세기에 세운 도시인데 아이가이 대신에 마케도니아의 수도가 되었다.
  • 그라니코스 강
  • 사르디스
  • 밀레토스
  • 할리카르낫소스
  • 고르디움
  • 이수스
  • 비블로스
  • 시돈
  • 티레/튀루스
  • 기자
  • 알렉산드리아
  • 아몬의 신탁
  • 멤피스
  • 예루살렘
  • 다마스쿠스
  • 니케포리온
  • 가우가멜라
  • 바빌론 -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기원전 323년에 여기에서 죽었다. 바빌론을 제국의 중심지로 만들려고 했다.
  • 수사
  • 페르세폴리스
  • 에크바타나
  • 라가이
  • 알렉산드리아 아리아나 (헤라트)
  • 알렉산드리아 아라코시아 (칸다하르)
  • 알렉산드리아 오피아나 (가즈니)
  • 발흐
  • 마라칸다 (사마르칸트)
  • 알렉산드리아 에스카테
  • 알렉산드리아 카피사 (바그람)
  • 알렉산드리아 부케팔로스
  • 팟탈라
  • 알렉산드리아 -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자기를 따라 명명한 도시인데 가장 좋아하는 도시들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 기원전 334
  • 기원전 333
  • 기원전 332
  • 기원전 331
  • 기원전 330
  • 기원전 329
  • 기원전 328
  • 기원전 327
  • 기원전 326
  • 기원전 325
  • 기원전 324
  • 기원전 323

카이로네이아 전투 후에는 필리포스 2세페르시아인을 맞서는 코린토스 동맹, 다른 말로 그리스 동맹을 세웠다. 기원전 337년에 이 동맹은 페르시아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페르시아는 당시 문제가 많았다. 그런데 필리포스 2세는 다음 해에 암살당했기 때문에 그의 아들, 알렉산데르 3세가 왕이 되었고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계속했다.

알렉산데르 3세의 군대는 주로 마케도니아인그리스 사람들로 구성되었으며 기원전 334년에 헬레스폰트를 건너가서 소아시아에 침입했다. 첫 전투는 그라니코스 강 근처에 일어났는데 파르시아 군대를 패배시키고 이오니아 도시들해방시킬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알렉산데르는 소아시아의 서부 해안을 지배하게 되었다.

작전의 원래 목포를 이르렀는데도 알렉산데르는 전쟁을 계속하기로 했다. 소아시아의 내부 지역, 주체적으로 고르디움까지 갔다. 전설에 의하면, 알렉산데르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신탁의 말에 따르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아시아의 통치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기원전 333년에, 알렉산데르의 군대는 페르시아의 왕인 다리우스 3세의 군대와 싸웠다. 이수스 전투마케도니아의 승리로 끝났고 다리우스 3세는 전쟁터에서 도망쳐 갔다.

이 전투 후, 알렉산데르는 페니키아팔레스타인을 정복했다. 티레에서만 저항에 부딪혔는데 몇개월 동안 포위 공격을 해서 포획할 수 있었다. 그후로, 바다 쪽에서 올 페르시아 위협이 없어졌다.

마케도니아 군대는 또 남쪽으로 갔다. 이집트가 항복한 후에 알렉산데르는 파라오가 되어 '아문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기원전 331년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세웠는데 이 곳은 나중에 수도, 또한 나라의 문화적 중심지가 되었다. 파라오는 아울러 시와 오아시스에 있는 아문의 신탁도 찾아갔다.

이집트를 떠난 다음, 다시 페니키아팔레스타인에 들어갔다가 동쪽으로 군사 작전을 계속했다. 목표는 전체 페르시아 제국침입하는 것이었다.

티그리스 강유프라테스 강을 이룬 군대는 가우가멜라 근처에서 다시 페르시아 군대와 싸우게 되었다. 이 전투는 또 마케도니아의 승리로 끝났고 다리우스는 또 도망갔다. 그후, 마케도니아 군대는 바빌론 쪽으로 가서 알렉산데르는 자기를 '아시아의 왕'으로 선포하였다. 기원전 330년초에 알렉산데르와 그의 군대는 페르시아의 수도, 페르세폴리스를 점령했다. 도시를 약탈하고 궁월을 태워 버렸다.

알렉산데르는 이미 페르시아의 왕이 되었는데도 도망가는 다리우스를 계속 추격했다. 박트리아에 갔는데 거기 왕은 다리우스를 포로로 잡아두고 있었다. 그런데 태수 (지방 장관)은 페르시아 왕을 죽인 후에는 알렉산데르는 다리우스를 페르세폴리스에서 국왕으로서 묻었다. 다리우스가 죽어서 알렉산데르는 아케메네스 왕조승계자가 되었다.

다음 몇년 동안, 알렉산데르는 소그드박트리아 쪽으로 가면서 원래 페르시아 제국의 동부 지역을 침입했다. 그후, 인도에 집중하게 되었다. 동쪽으로 확대해서 이미 거대한 제국 더 커지게 하려고 했다.

인더스 강을 건너가서 최초 전투는 기원전 326년히다스페스 강가에서 포루스 왕과 싸웠다. 이 전투는 또 마케도니아 승리로 끝냈지만 알렉산데르는 큰 손해를 입었다: 싸우다가 그의 애마, 부케팔루스가 죽었다. 이 말을 기념하려고 알렉산드리아 부케팔로스라는 도시를 세웠다.

알렉산데르의 부대는 인도 내부로 갔다. 그런데 길어진 작전과 기후 때문에 살아 있는 군인들은 지쳤으니까 히파시스 강을 이루자 계속하기를 거부했다. 따라서 알렉산데르는 인도를 정복할 계획을 포기하고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후로, 이 군대는 남쪽으로 가서 기원전 325년에 인더스 강의 하구에서 인도양에 도착했다.

여기에서는 알렉산데르가 군대를 두 부분으로 나눴다: 약 4분의 1은 배를 탔는데 대부분은 렉산데르를 따라가면서 페르시아로 걸어서 돌아갔다. 길이 가혹해서 이 부대는 큰 손해를 입었다. 두 부분은 기원전 324년수사에서 다시 하나가 되어 알렉산데르는 큰 잔치를 열었다. 상징적으로 페르시아와 마케도니아 귀족을 혼합시키도록 합동결혼식을 열었다고 한다. (수사 혼례)

기원전 323년 1월에는 알렉산데르는 바빌론에 돌아가고 나서 아라비아를 정복할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그 해 6월에, 32살 때 죽었으니까 이 계획을 실시할 기회가 없었다. 아마 심한 육체적 압박과음으로 인해 사망했다.

그리스 승계국

  • 안티고누스의 지배를 받는 지역
  • 셀레우쿠스의 지배를 받는 지역
  • 프톨레마이오스 소테르의 지배를 받는 지역
  • 뤼시마코스의 지배를 받는 지역
  • 카산드로스의 지배를 받는 지역

기원전 323년에 죽은 후, 알렉산데르 대왕은 아직까지도 분리되어 있고 상대적으로 약한 제국을 남겼다. 결과적으로, 이 제국은 점점 와해되었다. 이렇게 생긴 나라는 흔히 그리스 승계국이라고 불린다.

알렉산데르 3세는 죽기 전에 적자상속인으로 지명하지 않았고 디오도로스 역사가에 따르면 제국을 누구에게 남기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가장 강한 사람에게"라고 했다. 아내들 중의 하나인 록산느아들을 낳았는데 출생은 왕이 죽은 2달 후였다. 이 아들은 마케도니아의 왕이 돼 알렉산데르 4세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지만 아시아와 이집트, 즉 막대한 제국의 다른 지역을 지배하지 않았다.

알렉산데르 대왕이 죽은 뒤, 원래 장군들혈전을 싸워서 제국을 분할했다. 이들은 그리스 단어를 써서 디아도코이라고 한다.

마케도니아그리스카산드로스가 지배했는데 안티고누스가 죽은 후, 그의 영토를 얻기도 했다. 트라키아소아시아의 여러 지역은 뤼시마코스의 지배를 받았다. 마케도니아 제국의 동부 지방셀레우코스의 나라가 되었는데 셀레우코스 왕조를 세웠다. 셀레우코스 제국은 기원전 64년의 로마 정복까지 존재했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이집트를 다스리고 그가 시작한 왕조는 클레오파트라 7세가 죽을 때까지 파라오의 땅을 지도했다.

마케도니아 전사

  • 사리싸 - 약 4-6 미터 긴 창.
  • 흉갑
  • 철모
  • 방패
  • 정강이받이
  • 샌들

마케도니아 중장보병은 주로 4-6 미터 긴 , 즉 사리싸를 오른손에서 들고 싸웠다. 검은 그리스 전사들의 검보다 길었다. 각 중장보병은 왼손에서 가벼운 방패를 들고 자기 몸의 왼면, 그리고 자기보다 왼쪽에서 가는 군인을 지켰다. 방탄복을 입고 철모를 썼다.

마케도니아 밀집 장창 보병대

팔란크스라는 말은 원래 그리스 단어인데 군합이나 공통체를 의미한다. 군사 용어로서 여러 줄로 된 직사각형으로 이동하는 중보병대를 뜻한다. 어떤 과학자들은 밀집 장창 보병대가 그리스 발명이라고 주장하지만 어떤 사료에 의하면 이런 것은 이미 고대 그리스 시대 전에도 여러 나라에서 쓰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리스는 밀집 장창 보병대에 숙달하였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스 장갑 보병은 주로 2-3 미터 긴 , 즉 도루를 오른손에서 들고 싸웠다. 또, 짧은 검을 쓰기도 했다. 각 중장보병은 왼손에서 가벼운 방패를 들고 자기 몸의 왼면, 그리고 자기보다 왼쪽에서 가는 군인을 지켰다. 방탄복을 입고 철모를 썼다.

밀집 장창 보병대는 너비 및 깊이는 군인의 , 그리고 지형에 따라 다양했는데 일반적으로 8줄로 이어졌다. 이런 군사적 모양 덕분에 그리스 군대는 수많은 전설적인 전투를 이겼다.

필리포스 2세마케도니아 군대에 최초로 이 밀집 장창 보병대를 도입했다. 마케도니아 밀집 장창 보병대는 원래 중보병도 구성되었다. 기본 단위를 신태그마라고 하는데 16줄로 구성되었고 각 줄에는 16명의 군인이 있었다.

이 256 명의 군인은 다 사리싸라는 창을 들고 있었는데 그리스 창보다 훨씬 길었다. 4-6 미터에 달했다.

첫줄에 있는 군인은 사리싸를 수평으로 들었고 6번째 줄부터 뒤에서는 수직으로 들었다.

마케도니아 포위 탑

중요한 도시들은 이미 고대 시대 때 성벽으로 둘러싸 있었다. 이런 요새를 공격하려는 누군가가 특별한 장치즉, 공성 기구를 가져와야 했다. 투석기는 먼 거리에서부터도 효과적이었지만 궁극적 성공을 이루기 위해 군인들은 되도록 가까이 가야 했다. 벽 옆에서는 소방용 사닥다리, 공성 망치, 그리고 포위 탑을 이용하기 가능했다. 포위 탑을 최초로 아시리아 사람들이 사용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나중에 다른 민족, 예를 들면 마케도니아도 이런 장치를 썼다.

포위 탑은 군인을 벽 가까이에 무사히 나르는 데, 또한 벽을 효과적으로 공격하는 데 쓰였다. 포위 탑은 높은 구조였는데 여러 층으로 되었다. 바퀴가 있는 차대 위로 만들었다. 탑 위로 올라가는데 내부에 있는 사다리를 썼고 성벽과 가까울 때 도개교를 이용했다. 그것을 건너서 군인들은 도시나 요새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군인을 지키도록 포위 탑의 세 면에 도 있었다.

주요 건축 자재는 나무였으니까 요새를 방어하는 사람들은 많은 경우에 불화살을 쏘거나 불이 난 발사체를 던져서 포위 탑을 태워 봤다. 그러니까 포위 탑은 내화 재료, 예를 들어서 젖은 가죽으로 덮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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