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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모필레 전투 (기원전 480년)

테르모필레 전투 (기원전 480년)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의 전투는 스파르타 군인들의 영웅적인 희생으로 유명해졌다.

역사

검색어

페르시아 제국, 스파르타, 크세르 크세스, 레오니다스, 페르시아인, 그리스어, 싸움, 전쟁, 아노파이아 산, 도시 국가, 전투, 유물, 테르모필레, 장갑 보병, 지골, 병사, 그리스-페르시아전쟁, 이력, 기원전 5세기, 헬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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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테르모필레 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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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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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키스인, 그리스 연합군

내레이션

단계 1

페르시아 군대의 일부는 바다 쪽에서 도착했고 다른 일부 대륙 쪽에서 왔다. 페르시아 군대는 준비를 천천히 하고 있었고 그리스 군대가 페르시아의 숫적인 우세를 보니 포기하기를 바랐다.
레오니다스 왕이 지배한 스파르타 군대는 테르모필레 해협을 막고 벽을 강화시켰다. 그러므로 더 좁은 공간을 지켜야 하게 되어 자기 전쟁 행위에 더 잘 맞았다. 왕은 포키스인들에게 산속에 올라가는 아노빼아 길을 지키라고 명령을 내렸다.

단계 2

페르시아 군대는 그리스인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제1 파면으로 킷시아인과 메디아인들이 나갔는데 화살로 '해를 덮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리스 전선을 이겨낼 수 없었다. 거대한 손실을 입었고 후퇴해야만 했다.

단계 3

다음으로, 크세르크세스가 불사부대, 즉 페르시아의 정예 군병력을 보냈다. 그런데 장갑 보병들이 긴 창을 갖고 있으니 좁은 공간에서 더 효과적으로 싸울 수 있었기 때문에 또 페르시아 군대가 이길 수 없었다. 아울러 큰 손해를 입은 후, 크세르크세스는 헬라스를 정북하는 전쟁이 위험에 빠졌다고 깨달았다.

단계 4

에피알테스라는 주민은 크세르크세스에게 페르시아 군인들을 그리스 전선 뒤로 가는 데 도울 거라고 그리스 군대를 팔아먹었다. 페르시아 군인이 아노빼아 길로 올라온다는 것을 보니까 포키스인들은 후퇴하기 시작했고 레오니다스 왕은 그리스 군대의 나머지 부분에게도 후퇴하라고 명령했다. 전설에 따르면 레오니다스 왕이 300명의 테베 군인과 스파르타 군인과 싸움을 계속했는데 모두 다 죽여 버렸다. 그러나 헛된 희생이 아니었다. 페르시아 공격을 위해 충분히 준비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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